<건설인문학⑭> 탈생산주의적 사회로의 전환… 르페브르의 ‘차별 공간’
<건설인문학⑭> 탈생산주의적 사회로의 전환… 르페브르의 ‘차별 공간’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6.11.09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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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두 대구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

희망의 도시, 어떻게 이론화할 것인가_ (1)도시인의 소외와 정의로운 도시

탈생산주의적 사회로의 전환,
르페브르의 ‘차별 공간’

▲ 사진제공 = 픽사베이

< 공간의 철학자 르페브르의 탈소외 이론 >
└ ‘차이의 정치’ 통해 소외된 일상생활을 차별의 공간으로 전환
└ 기술관료적 추상화ㆍ동질화ㆍ정량화, 성장 이데올로기의 극복
└ 소외 심화로 도시민들의 주체적 실천력 소진, 심각하게 검토해야

 

4. 탈소외로서 정의로운 도시

 1) 소외 극복을 위한 이론과 현실

▲ 최병두 교수
  (대구대 지리교육과)
<지난호에 이어> -  ‘헤겔의 소외론’과 이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마르크스의 소외 및 물신화이론’ 이후 소외에 관심을 가졌던 많은 이론가들은 소외에 관한 비판적 논의와 더불어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였다.

마르크스는 초기 저술에서 임금노동과 사적 소유 및 노동의 분업으로 인해 자유로운 인간이 노동과정에서 자유를 상실하고 소외되었음을 지적하고, 사유재산제와 노동의 분업의 폐지를 통한 소외의 극복을 주장한다.

사적 소유제의 폐지는 노동자가 자연(토지)과 자신이 맺는 소외된 관계, 그리고 노동자가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의 사적 전유로 인해 발생하는 소외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한다. 자본주의적 분업의 폐지는 화폐에 의해 기능적으로 연계된 생산-소비 관계를 극복하고 자율적인 공동체적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추정된다.

마르크스는 후기 저작에서는 상품의 물신성으로부터 해방을 위해, 생산수단의 공유와 임금노동에 의한 생산체계의 극복이 주장된다. 다양한 형태의 노동력이 자각하여 사회적 노동력으로 확장된 자유인들의 연합체를 결성하고, 여기서 결합된 생산자들이 자연과의 신진대사를 합리적으로 통제(최소 노력과 인간성에 조응하는 관계)할 것을 제시한다(최병두, 2009).

탈소외를 위한 마르크스의 이러한 제안은 물론 이론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하겠지만, 현실적인 가능성에 관한 의문과 더불어, 현대 사회에서 소외는 생산영역에서 벗어나 사회공간적 모든 영역들로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대안의 모색을 요구한다.

현대적 소외가 생산영역에서 사회공간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제시된 대안들의 대표적 사례들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마르쿠제와 프롬의 소외론’에서 찾아 볼 수 있다(무스토, 2011 참조).

마르쿠제(Marcuse, 1966)에 의하면, 소외에 대한 비판은 노동과 기술 일반에 대한 비판이며, 소외의 극복은 생산활동에서 부정된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유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제시한다. 그는 마르크스가 제기한 생산수단의 공동소유에 기반을 둔 탈소외된 사회의 가능성을 폐기하고, 오직 노동의 종말과 리비도(libido)의 실현만이 소외된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프롬(Fromm, 1949)은 생산과정에서 유발된 소외를 극복하고 ‘적극적인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생산적 인간’과 ‘건전한 사회’의 형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생산적 인간(또는 ‘생산적 성격 유형’)은 인간이 이성에 의해 인도될 때 가능한 것으로 자기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이용하고 타고난 잠재력을 실현시키는 인간(성격) 유형을 의미한다.

마르쿠제의 대안은 기술 지배 일반에 반대하면서, 모든 노동을 자유와 희열과 대립시키고, 노동의 영역 밖에서 탈소외의 계기를 찾고자 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프롬의 대안은 생산적 인간으로 살아갈 때 인간은 자기의 힘을 자신이 실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 본성의 회복을 강조하지만, 생산적 인간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성이 아니라 진정한 노동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가에 대한 분명하지 않았다.

반면, 탈소외에 관한 ‘르페브르’의 견해는 마르쿠제나 프롬과는 다르다.
마르쿠제나 프롬은 노동의 영역 밖에서 탈소외의 계기를 찾고자 하지만, 르페브르는 소외된 노동 또는 소외된 일상생활 자체에서 탈출의 계기를 찾고자 한다.

르페브르의 저서《일상생활 비판》(Critique de la vie quotidienne Ⅰ,Ⅱ,Ⅲ, 1947, 1962, 1981)에서 ‘비판’은 “가능성, 아직 완수되지 않은 가능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비판의 과제는 이러한 가능성과 완수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논증하는 것이다”(Lefebvre, 1991a, 18-19). 이러한 점에서 일상생활은 기술관료적 생산주의에 종속되어 있지만, 또한 이에 저항적이며, 따라서 소외의 영역이면서 또한 가능한 ‘탈소외’의 자리이기도 하다.

일상적 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소외되었음을 의식함으로써 탈소외의 가능성을 찾게 된다. 소외(낯섬에 대한 인식을 낯설게 하는)에 관한 의식은 우리를 소외로부터 해방시키거나 해방시킬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인간은 소외에 관한 의식을 통해 그 자신을 ‘탈소외’시킬 수 있다. 일상적 인간은 ‘실천 인간’이며, 실천만이 그를 소외로부터 그를 해방시킬 수 있다(ibid, 20-23). 이러한 일상생활의 소외 의식으로부터 탈소외의 가능성 모색은 르페브르가 《공간의 생산》(La production de l’espace, 1975)에서 제시한, 추상공간에서 차별공간으로의 전환, 현실적인 것 내에서 가능한 것의 추구, 기존의 도시 공간(그리고 이의 재현)에 존재하는 잠재적 탈자본주의 공간을 의미한다.

즉, 추상공간의 소외에 관한 비판은 추상공간이 차별적 공간의 가능한 탈소외에 대립적으로 이해될 것을 요청한다(Wilson, 2013). 르페브르가 제시한 탈소외 공간으로서 ‘차별공간’은 자율성 또는 자주관리(autogestion)와 이를 위한 차이의 정치 등에 바탕을 둔 ‘혁명적 낭만주의’에 관한 그의 관심과 관련된다. -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1901~1991)는 《공간의 생산》에서 ‘차별 공간(l’espace differentiel)’을 공간적 실천이 도달해야 할 대안적 사회 공간으로 설정하고 있다. 공간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한 《공간의 생산》은 철학, 사회학, 정치경제학 등의 경계에서 공간 문제에 대해 접근한 책이다. 이 책에서 르페브르는 공간을 물리 공간, 사회적 공간, 정신 공간 세 개념으로 구분하여 사회적 공간의 의미를 규정하고, 구체적이고 다면적인 현실에 성찰을 제공하는 개념인 총체성으로서 ‘공간’을 강조하고 있다. - 편집자주

일상생활을 생산주의적 규정력에 종속시키는 ‘기술관료적 도구적 합리성’은, 추상화를 통해 사회를 지속적으로 지배하고자 한다. 르페브르는 이러한 ‘추상공간’의 소외된 현실에 개입하여, 탈생산주의적 공간으로서 ‘차별공간’의 인식과 실천을 강조한다.

탈생산주의, 자율화 또는 자주관리는 ‘교환가치에 대한 사용가치의 우선성을 강조’하고, 생산의 집단적 자기관리를 의미한다(Lefebvre, 1991b, 18). 이러한 자율화, 즉 탈소외의 정치는 동질화, 추상화에 의해 체험된 경험의 지배에 반대하는 차이의 정치를 통해 일상생활을 차별의 공간으로 전환시키고자 한다.

차별공간의 생산은 교환가치에 대한 사용가치, 동질성에 대한 차이, 정량화에 대한 정성화, 인지된 것에 대한 체험된 것의 우선성, 그리고 생산주의의 극복과 ‘탈생산주의적 사회로의 전환’ 등을 포함한다.

여기서 ‘생산주의의 극복’은 노동에 의한 생산의 포기가 아니라, ‘기술관료적 성장 이데올로기의 극복’을 의미한다. “성장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해방은 침체된 내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풍요와 창조적 자유의 탈소외된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Wilson, 2013, 10).

 
이러한 르페브르의 ‘혁명적 낭만주의’는 그의 평생 연구에서 이러한 가능성의 집단적 실현을 위한 희망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탈소외에 관한 르페브르의 주장들은 이론적 실천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짐에도, 한 가지 의문을 가지도록 한다. “인간은 소외에 관한 의식을 통해 그 자신을 탈소외시킬 수 있다”는 르페브르의 주장은, 물론 현대사회(도시)의 소외된 일반 시민들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헤겔과 마르크스 이후 많은 철학자와 사회이론가들이 소외의 근원과 그 심화과정에 관하여 그토록 심각하게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에서 소외는 어떻게 점점 더 심화되었으며, 반면 탈소외의 가능성은 어떻게 줄어들었는가?

이러한 의문은 소외를 심화시키는 자본축적 과정과 이에 내재된 모순들에 관하여 더 체계적인 연구를 요청하며, 또한 ‘소외의 심화로 인한 도시인들의 주체적 의식과 실천 가능성의 소진’에 관해서 더 심각하게 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탈소외를 위한 이상적 전망과 현실적 대안 간의 괴리에 주목하고, 대안의 실현가능성과 더불어 진정성 및 의사성 여부에 대해서도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예로 오늘날과 같이 지구적 인구 성장과 생산체계의 지구적 확장, 그리고 이에 따른 행성적 도시화 과정에서, 탈소외를 위한 노동의 사회공간적 분업은 폐기되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폐기될 수 있는가 등의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 (도시)사회에서 소외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은 이를 유발하는 자본과 국가가 소외 그리고 소외의 외형적 표출을 일정하게 통제하거나 또는 소외된 노동자들이 자신의 소외를 의식하지 못하도록 억제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 <다음 호에 계속>

정리= 한국건설신문 이오주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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