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인문학⑯> 희망의 도시, 어떻게 이론화할 것인가(2)
<건설인문학⑯> 희망의 도시, 어떻게 이론화할 것인가(2)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6.11.30 12: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치철학자 조정환(다중지성의 정원 대표)

희망의 도시, 어떻게 이론화할 것인가_ (2)조정환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

예술인간의 탄생과 반자본주의적 ‘공통도시’의 전망

 ⓒ픽사베이

< 자본주의적 근대도시의 관점에서 본 ‘시초축적’ >
┗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의 ‘Primitive Accumulation’
┗ 오늘날에도 일상적으로 되풀이 되고 있는 시초축적의 미시적 요소들
┗ 국내외적으로 더욱 확대/심화된 규모의 성적ㆍ인종적ㆍ계급적 착취


1. 공통장으로서의 도시와 그것의 두 차원


▲ 조정환, 정치철학자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
나는 도시를 인간 및 자연의 사회적 관계가 공간적으로 경관화 되어 나타나는 물질적이거나 비물질적인 신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정의한다.

거시적 도시는 미시적 도시들의 복합체이다. 지구상에 서식하는 무수한 생명개체들은 그 자체로 복수의 전 개체적 힘들이 서식하는 미시적인 도시들이며 일종의 애벌레 도시들이다. 도시는 개체적인 차이와 전 개체적인 차이들의 마주침과 갈등적 공존의 공간이며 그런 의미에서의 ‘공통장’1) 이다.

도시 공통장에서 잠재적인 차원과 현실적인 차원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잠재적 공통장은 모든 현실적인 것들이 놓이는 미분적 공존의 표면이며, 현실적인 것은 그 공존의 표면에 놓인 차이들의 적분적(통합적) 실현의 장이다. 잠재적 공통장은 역량(puissance)의 장이며, 현실적 공통장은 권력(pouvoir)의 장이다.

들뢰즈는 이것을 몸체의 ‘위도’(latitude)와 ‘경도’(longitude)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2) 위도는 역량의 특정한 정도에 따라, 또는 이 정도의 한계들에 따라 몸체가 취할 수 있는 정동들(affects)의 집합이다. 다시 말해 서로 다른 역량들이 자신들의 한계에 따라 나타내는 내포적이고 강도적인 정동들의 장이 위도이다.
반면 경도는 특정한 운동과 정지, 빠름과 느림 등의 상대적 관계 아래에서 몸체에 속하는 물질적 요소들이 이루는 집합(Deleuze and Guattari, 1979, 493)으로서, 외연적 부분들이 특정한 관계 아래에서 조직되는 것을 지칭한다. <중략> 즉 도시의 위도는 그 속에서 내포적으로 전개되는 무수한 자연적 인간적 기술적 인지적 진동들이며, 도시의 경도는 그 진동들이 외연적으로 재현되고 경관화 되는 관계와 운동들이다. <중략>

『자본론』 제8편 ‘이른바 시초축적’은 중세도시들이 해체되고 자본주의적 근대도시가 형성되는 과정을 그 위도와 경도의 차원에서 분석한다. 생산수단인 토지로부터 농민들의 폭력적 ‘분리’는, 무자비한 폭력으로 농촌주민으로부터 토지를 수탈하여 자기노동에 입각한 사적 소유를 철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Marx, 1954, 973). 그 분리는 다르게, 교회재산을 약탈하거나, 국유지를 사기적으로 양도하거나, 공유지를 횡령하거나, 봉건적 및 씨족적 소유를 약탈하여, 그것들을 근대적 사적 소유로 바꾸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Marx, 1954, 922).

이러한 분리는 두 가지 효과를 가져온다. 하나는 토지를 자본에 결합시켜 자본주의적 농업을 위한 무대를 마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시의 산업을 위해 필요한 무일푼의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라는 주체를 공급하여, 자영수공업자 중심의 중세 자치도시들을 자본가와 노동자로 분리된 자본주의적 근대도시로 바꾸는 것이다(Marx, 1954, 900, 922).

국가 수준에서 전개되는 폭력은 이 두 가지 과정을 촉진하고 또 완성시킨다. ‘토지로부터 농민의 분리’와 ‘신흥 도시에의 흡수 사이’의 시간 간격에서 나타나는 ‘떠돎’을 제거하고, ‘떠돌이’들을 신속하게 도시 프롤레타리아로 전화시켜 도시에 흡수되도록 만드는 작업들이 그것이다.

이렇듯 국가권력은 부랑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여 부랑자를 태형, 감금, 낙인, 고문, 노동교화, 사형 등으로 처벌함으로써 분리와 프롤레타리아화를 촉진했다.3) 또 이미 고용된 노동자들에 대해서 국가권력은 최고임금을 규정하되 최저임금은 규정하지 않는 노동법이나 단결금지법을 제정하는 방식으로 자본의 시초축적을 촉진하는 기계장치로 기능했다. - <편집자주> 마르크스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자세하게 고찰하면서 자본의 ‘시초축적’(primitive accumulation)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밝히고 있다.

시초축적은 국내적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국제적 수준에서도 전개되었다.
‘아메리카에서 금은의 발견, 원주민의 섬멸과 노예화 및 광산에서의 생매장, 동인도의 정복과 약탈의 개시, 아프리카 상업적 흑인수렵장화’(Marx, 1954, 944)와 같은 식민제도, 생활수단에 대한 무거운 과세(이른바 ‘근대적 조세제도’)에 기초한 국공채의 발행, 보호무역제도와 지구를 무대로 하는 유럽 국민들의 무역전쟁(Marx, 1954, 952)등이 그것이다.

‘자본주의적 근대도시를 위한 시초축적의 요소’는 이러한 계급적 인종적 착취와 수탈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 과정은 무자비한 성적 착취를 수반하는데 마르크스가 누락한 이 측면은 실비아 페데리치에 의해 상세히 규명되었다(Silvia, 2004, 235-308).

실비아 페데리치(Silvia Federici, 1942~, 이탈리아 여성이론가)에 따르면, 마르크스가 말한 피의 입법과 거의 동시기에 전개된 여성에 대한 테러전쟁, 즉 ‘마녀사냥’이야말로 시초축적에 대한 이해에서 빼놓아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의 하나다.

 
국가와 자본은 예술가들을 동원하여 마녀들의 인물과 악행에 대한 상상된 세밀화를 그리게 하고, 법학자 변호사 정치가 과학자 신학자 치안판사 악마연구자들 같은 지식인을 동원하여 마녀박해를 위한 지적 법적 장치들을 체계화했다. 또 유럽의 국가들은 법적 행정적 사회적 수준에서 유사한 제도들을 도입함으로써 마녀 박해를 위한 범 유럽적 수준의 연대관계를 구축했다.

이렇게 전 사회적이고 전 유럽적인 수준에서 고안된 마녀박해의 기획은 ‘고발-고문-자백-화형’으로 이어지는 처벌 절차를 통해 마치 농민으로부터 공유지를 박탈하듯이 여성들로부터 신체를 박탈했다.

끔찍한 화형식 광경은 자본주의적 노동규율과 양립할 수 없는 관습, 신념, 사회적 주체를 파괴하고, 여성과 남성을 성적으로 분리시키며 여성을 부불(不拂)가사노동을 담당하는 하위주체로 배치함으로써, 여성 신체를 오직 가사노동과 노동력 재생산만을 위한 기계장치로 전락시켰다.

특히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1871~1919,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지식인 혁명가이자 ‘불꽃 여인’으로 불린 여성 사회주의 혁명가) 이후에, 이러한 시초축적의 요소들을 이미 지나가 버린 일회적인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지금도 일상적으로 되풀이 되면서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들을 재생산하는 현행적인 요소들로 파악하는 인식은 널리 공유되고 있다.

오늘날도 더욱 확대되고 더욱 심화된 규모로, 그리고 변형된 형태로 성적, 인종적, 계급적 착취와 수탈의 장면들을 재생산하고 있는 이러한 ‘시초축적’의 미시적 요소들이 자본주의적 근대도시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의 외연적 경도들을 가져오는 내포적 진동들, 즉 위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 <다음호에 계속>

정리= 한국건설신문 이오주은 기자 

 

■각주

   1)  나는 여기에서 공통장(共通場)을 ‘공유지’(commons)와 ‘공통적인 것’(the common)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공유지(commons)는 근대 이전의 공동영유지를 지칭하는 역사적 용어이고 ‘공통적인 것’(the common)은 공유지를 넘어서 공기, 물, 바람, 태양, 지구 등의 자연적인 공통적인 것과, 언어나 사회화된 노동력과 같은 사회적인 공통적인 것을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멕시코(사빠띠스따)나 에콰도르(CONAIE)의 원주민 운동에서 보이듯 오늘날도 세계 전역에서 공유지를 위한 투쟁이 여전히 중요한 점을 고려하면서 ‘공통적인 것’을 사고하기 위해서는 이 양자를 통합할 수 있는 용어가 필요한데, ‘場’이 흙 ‘土’와 태양이 솟아오름을 뜻하는 볕 陽’이 결합된 것으로 ▷물리학적인 분자적 운동의 공간 ▷생물학적 발생의 공간 ▷사물의 유통의 공간 ▷사회적 구조화의 공간 ▷연극적 정치적 인지적 공간 등을 두루 지칭할 수 있는 용어인 점을 고려하여, 우리 시대의 공통된 물리적 생물적 사물적 사회적 인지적 공간을 지칭하기 위해 ‘공통장’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한다. 이러한 공통장을 창조하고 변형하며 사용하는 사람들을 공통인(commoner)으로 명명한다.

    2)  “몸체의 경도라고 불리는 것은 역량의 특정한 정도에 따라, 또는 차라리 이 정도의 한계들에 따라 몸체가 취할 수 있는 변용태들이다”(Deleuze and Guattari, 1979, 487)에서 ‘경도’는 ‘위도’의 잘못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 affect를 ‘변용태’보다 ‘정동’으로 새긴다.

   3)  이 주제는 미셸 푸코에 의해 정신병과 정신병동의 탄생이라는 고고학적 문제의식 하에 더욱 깊이 연구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