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인문학25> 희망의도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2)
<건설인문학25> 희망의도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2)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7.04.10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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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젠더 차별을 넘어 희망의 도시 상상하기

희망의 도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_(2) 정현주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

모든 공공담론에 젠더 정책 필요…
정치경제학부터 도시정책까지

 

여전히 ‘젠더블라인드’ 관점에서 논의되는 신자유주의 담론
‘교차성 이론’… 대안적 도시를 위한 젠더 정책의 이론적 접근


1. 젠더 차별 넘어 ‘희망의 도시’를 상상하기 위한 이론적 자원


▲ 정현주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
지난 100여년간 페미니즘 운동과 연구는 자본주의 체제가 지닌 착취와 억압이 젠더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학계와 주류사회의 담론 역시 여성을 비가시화함으로써 남성중심적인 담론과 물질세계를 구성해 왔다고 비판해 왔다.

즉 이들은 ‘근대문명의 남성중심성’을 폭로하고 해체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나름의 혁혁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주류 지구화 담론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석은 여전히 과거의 전철을 밟아 ‘젠더중립적’인 이론과 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에 대한 페미니즘 진영의 대응과 해법은 분산되어 있거나 주류논쟁에서 다소 거리를 두고 스스로 타자화하거나 적극적인 이론화가 부족한 것도 현실이다.

피크와 리커는 페미니즘 진영의 분열을 뼈아프게 자성하면서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이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차별적으로 발전함으로써 남성중심적인 이분법체계를 무너뜨리고자 했던 페미니즘이 스스로 거대한 이분화의 장벽을 만들어내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Peake and Rieker, 2013, 1).

‘서구백인페미니즘’이라고 대변되는 북반구 페미니즘의 이론과 쟁점 및 실천은 개발도상국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남반구 페미니즘’의 관심사와 괴리되어 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북반구는 섹슈얼리티와 젠더의 담론적 구성에, 남반구는 발전의 문제에 천착해 온 감이 있다고 피커와 리커는 지적한다.

북반구와 남반구로 분열된 페미니즘 진영은 주류이론과 정책으로부터 소외 내지는 스스로 거리두기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가령 ‘중요’하다고 항상 우선시되는 정치경제담론은 여전히 ‘젠더블라인드 관점’에서 논의되고 확산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이론화와 담론에서도 젠더와는 상관없는 신자유주의라는 유령이 마치 지구를 잠식하고 생활세계를 파괴하며 유례없는 양극화를 양산하는 듯한 상상이 만연해 있다.

그렇다면 세계금융과 글로벌 도시는 과연 젠더중립적으로 작동하는가?
젠더는 마치 ‘중요’한 모든 논의들이 끝나고 난 뒤 그 밖에 ‘소소한’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에 상투적으로 동원되는 관념어인가?
여성친화적이라는 최근 추세에 발맞추기 위해 여러 정책의제 중 마지막 부분에 살짝 추가하면 되는 관행에 불과한 것인가?
또는 많은 사회에서 제도적 남녀평등이 이루어졌으므로 페미니즘은 동력을 상실한 관점이며 따라서 젠더문제도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주제인가? 

우선 여성주의 의제가 자본주의와 정치경제 등 거시담론과는 거리가 먼 재생산과 일부 ‘소소한’ 분야에 국한되어 있으므로 부차적이라는 관념은 남성주의적 문명이 만들어 낸 이데올로기이다.

여성주의 의제는 ‘일부’ 여성들을 위한 지엽적이고 수혜적인 복지정책에 국한되지 않는다. 주류 정치경제 및 모든 학문분야 담론에서 폄하되는 재생산의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과연 재생산이 생산과 분리된 부차적 영역인지부터 재개념화할 필요가 있다.

지구적인 자본주의 생산은 매우 중요한 이슈이고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보편성을 지닌 탐구 대상이라면, 가령 집 안에서 먹고 자는 문제나 미래 세대를 키워내는 문제는 지구적 자본주의와는 무관한 덜 중요한 문제인가?

금융자본주의의 중심지인 런던의 금융 엘리트의 일상을 한 번 상상해보자.
그는 아마도 전형적인 백인남성일 가능성이 높고 중심가의 비싼 아파트에 살면서 날마다 잘 다려진 와이셔츠를 입고 건강하게 관리된 몸을 유지하며 증권가로 출퇴근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러한 지구적 상위 엘리트 계층인 데니즌(denizen)들이 높은 생산성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날마다 와이셔츠를 다리고 영양식을 제공하며 쾌적하게 집을 관리해야 한다.

전통적으로는 전업주부가 이 역할을 담당해 왔지만 최근에는 제3세계에서 이주해 온 이주노동자들이 제1세계의 재생산의 상당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여성들이다.

남편들과 비슷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 21세기 제1세계 일부 여성들이 ‘해방’되었다고 해서 페미니즘의 종말을 논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부 여성들은 해방되었을지 몰라도 지구상의 대부분의 여성들은 여전히 빈곤의 사다리에서 밑바닥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구적 자본주의는 이러한 권력관계를 충분히 활용하며 작동하고 있다. 노동의 젠더분업은 여전히 자본주의 작동의 핵심기제이다.

>>> 새로운 젠더 이론
┕ 여성 간 다원화된 정체성에 따른 입장의 차이
┕ 젠더, 인종, 계급 등 다양한 권력 기제들…
┕ 상호교차하며 억압의 지점과 층위 만들어

>>> 교차성 이론(intersectionality)
┕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 간 지위 격차 문제 심각
┕ 북반구와 남반구 여성, 제1세계 여성과 제3세계 여성
┕ 지구적 ‘돌봄연쇄’(global care chain) 형성과 노동의 젠더분업

>>> 신자유주의
┕ ‘젠더중립적’ 세계금융과 글로벌 도시
┕ 여전히 ‘젠더 블라인드 관점’에서 논의되는 정치경제 담론
┕ 정치경제부터 도시정책까지 ‘모든 공공담론에 젠더 관점 필요’

>>> 대한민국
┕ 남녀간 임금격차 36.7%…OECD 국가중 1위
┕ 성평등 지수…르완다나 인도보다 낮은 115위

 
이 글에서 필자가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은 첫째, 자본주의 생산과 재생산은 이분화되기 보다는 상호연동되어 작동해 왔으며, 최근에는 특히 재생산이 급속히 유급노동화되면서 생산의 영역이 되었지만 여전히 일부 여성들에게 국한된 이슈로 폄하되거나 주요 정치경제담론에서 주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경제는 여성들을 대거(주로 단순 사무직 내지는 비정규직으로)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노동의 유연화를 증대하고 있다. 이로 인한 재생산의 공백은 또 다른 여성들의 유입으로 메우는 이른바 지구적 돌봄연쇄(global care chain)(Sassen, 2002)의 형성과 노동의 젠더분업(Massey, 1995)을 근간으로 하여 유지되고 있다.

정치경제학 이론에서부터 도시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공담론에서 젠더 관점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뜻이다.

둘째, 젠더관점은 남/녀를 이분화해서 여성들에게 수혜를 줄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남/녀를 이분화하는 것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며 무엇이 남성적이고 무엇이 여성적인지를 누가,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젠더관점을 주창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주로 여성의 억압과 해방을 주창하는 이유는 젠더중립이라고 주장해 온 관점이 사실은 남성중심적이다. 따라서 젠더중립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여성억압적인 권력관계를 은폐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이므로 젠더화된 관점은 주로 억압당했던 여성적 주체를 해방하는 데에 일차적인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멀리 제3세계까지 갈 필요도 없이, 제도적 남녀평등이 이루어졌다고 믿는 21세기 대한민국도 여전히 여성에게 억압적인 남성중심적 사회이다. 지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련의 성범죄도 전부 피해자는 상대적으로 권력의 약자인 여성들이었다.

피해자였던 그녀들은 강남의 한 복판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있었거나 시골 지역에서 소위 선망의 직업이라고 하는 교사였던 여성들로서, 언뜻 보기에는 피해를 당할만한 사회경제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방비로 폭력범죄에 노출되었다.

문제는 강남이든 섬지역이든, 여대생이든 여교사든 이사회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들에게는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는 점이다.

남녀간의 임금격차가 OECD 국가 중 1위(36.7%)이며 성평등 지수가 르완다나 인도보다 낮은 115위(2015 세계경제포럼)라는 ‘객관적인’ 통계자료가 이러한 정황을 뒷받침하고 있다. <표 참조>

▲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활용 추계, 오마이뉴스에서 재인용(2016.1.16)

여성적 의제와 성(性)인지적 정책이 젠더평등을 위해 여전히 이 사회에서 필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만 여성을 보호하는 정책을 넘어 근본적으로 젠더차별을 극복하는 대안적 인식론과 정책방향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이론적 자원을 탐색하는 것이 이 글의 또 다른 목표이다.

셋째,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최근 페미니즘이 비판적 사회운동과 이론으로서 그 동력을 상실한 듯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페미니즘 내부의 분열’이다.

분열된 페미니즘을 하나로 다시 통합할 것을 주창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분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다원화된 페미니즘 이론‘들’이 여러 층위에서 비판이론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이론을 정교화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를 비롯한 최근 페미니즘 연구가들의 문제인식이다.

페미니즘의 문제는 서로 소통하지 않고 연대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모색하지 않은 ‘정치적’ 문제이지 분열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여성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이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만큼 여성은 다양한 정체성들이 교차하고 경합되는 장’이다.

제1세계 여성과 제3세계 여성은 전술한 사례처럼 삶의 장이나 당면과제 등에 있어서 동질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별화된 삶의 경로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같은 사회에서도 백인여성이냐, 흑인여성이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종류의 억압을 경험하기도 한다.

젠더뿐만 아니라 인종, 계급, 학력, 국적 등에 따라서 여성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위치들로 분화되어 있다. 이러한 여성들의 다양한 삶의 문제를 젠더 하나로 일원화하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동시에 폭력이 될 수 있다.

페미니즘이 비판적 동력을 회복하기 위한 이론적 대안은 다양한 여성들의 입장을 성찰하고, (남성과의 차이뿐만 아니라) 여성들 간의 차이와 억압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밝혀낼 수 있는 접근을 모색하는 것이다.

최근 여성학계에서는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론”을 통해 이러한 접근을 취하고 있다.

교차성 이론이란 젠더와 인종, 계급 등 다양한 권력의 기제들이 상호교차하며 억압의 지점과 층위들이 만들어 진다는 점에 착안하여 여성들 간의 다원화된 정체성에 따른 입장의 차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접근이다.

이 글에서는 교차성에 입각한 접근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아직 이론에 머물러 있는 이러한 접근을 희망의 도시를 위한 대안적인 젠더정책 입안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모색해 보고자 한다. - <다음호에 계속>

 

(* 이 글은 <한국도시지리학회지> 19권 2호 또는 <희망의 도시> (2017, 한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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