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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칼럼] ‘건설사 설계겸업’…포기는 없다?

기사승인 2018.10.02  12: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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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정도 투지면 나라도 구하겠네”

   
 
얼마전 대한건설협회가 ‘건축설계업 진입제한 규제개선’ 이란 제목으로 건설회사도 건축설계를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의견을 국토교통부에 제출했다고 한다. - 여기서 가장 자연스러운 반응은? - “또?” 라고 하면... 정답이다.

“나도 설계할 수 있어!” 하며 나서는 것은 건축설계가 얼마나 종합적인 기술인지 모른다는 뜻이다. 게다가 국토부로부터 여러번 보이콧을 당했는데도 이리 의지가 굳건하니 경의로울 지경이다.

대한건축사협회는 최근 협회지를 통해 “건설사들은 이미 ‘일부가능’(20인 이상 건축사 고용한 건설회사에 설계업 허용)까지 현행법으로 적용받고 있다“면서 건설협회의 끈질긴 요구에 더는 물러설 수 없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럼에도 건설사들이 ‘종종-자주-늘’ - 마치 포기를 모르는 듯 - 잊을만하면 설계겸업을 들고 나오는 이유는 “우리도 현장에서 도면 보고 건물 지어 봤는데, 도면 그거 별거 아니야. 우리가 더 잘해!”라는 심산이다. 여전히 건축가를 ‘도면쟁이’로 보는 건 일제의 잔재라고 해야 하나...?

여기에 자본주의 기업정신으로 혁신하여 - “우리 회사에도 엄연히 건축담당 부서가 있잖아? 비싼 월급 주면서 건축사자격증 가진 직원 데려다 놨는데 왜 설계사무소한테 맡겨서 비용 더 들고 번거로워야 해? 우리 직원이 하면 현장을 아니까 설계는 훨씬 잘 할 것이요(주관적인 기준으로), 그러면 설계변경도 줄어들 것이고, 공기 단축에 비용 세이브, 고용 효용까지 높이니 그야말로 1석3조 아닌가... 그러니 건설사 설계겸업 금지는 이해가 안되는 규제야. 전면 개방시켜야 해. 될 때까지 찔러 보는거지. 그런다고 우린 손해 볼 것도 없고.” 등등의 생각들.

일단, 대기업이 떡볶이 포장마차나 동네 구멍가게 상권에 뛰어들겠다는 꼴과 같다. 하지만 꼴사나움에 가책을 느끼며 악행을 멈추는 기업은 세상에 없고, 결국 편의점 등 가맹점과 체인을 투입해 골목상권을 파괴한 대기업과 매한가지로 건설사도 자신의 기업논리에 충실한 중이다. 이윤창출이 곧 진리고 선이다.

만약 건축물이 의식주 - 인간의 기본권- 중의 하나인 ‘주(집)’가 아니었다면 건축설계업은 애저녁에 건설사에 넘어갔을 것이다. 그나마 떡볶이 포장마차나 동네 슈퍼가 아니라서 이만큼 버티고 있다.

‘건설사 설계겸업’이 불가한 까닭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중소기업(어쩌면 영세상인) 보호론은 말단의 이유일 뿐이고, 원칙적으로 건설사 설계겸업이 불가한 까닭은 ‘무너지지만 않으면 건물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건축이란 콘크리트를 부어-굳혀-쌓아 올려 비싼 값에 판매하는 시멘트 덩어리(공산품)가 아니다.

건축설계와 건설시공, 두 업역이 분리되지 않으면 서로에게 견제력을 상실하면서 사업자의 편익과 영리가 설계의 주 목적이 될 것이다. 설계업도 시공업도 서로에게 서로가 그러하다.

건설업계는 유관 전문 집단과 협업하는과정을 비효율로 인식하는 것 같다. 그러나 비효율의 과정들이 바로 효율에 이르는 길(기본에 충실해져 가는 과정)이다.  

최고의 성능이 아니라 최소한 갖추어야 하는 기본 말이다. - 비효율의 추구가 효율이고, 효율 추구가 비효율일 수 있다는 생각까지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 대중소 간 협업을 혁신의 저해 요인으로 이끄는 것은 대기업의 갑질이지 업역 분리가 그 원인은 아니다.  

건설사가 설계 겸업을 하게 되면 현실적으로 살아남는 건축사사무소는 극소수일 것이다. 분양원가도 공개 못하겠다는 건설회사가 모든 사람들이 살고 머물러야 하는 건축물의 생산과정을 독식한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이 불량 건축물을 구매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일반 상품처럼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하겠는가? 사은품 좀 받으면 성을 풀겠는가? 과연 건축물의 불량 문제가 이런 식으로 충족될 사안인가? 다시 말하면 상품이자 사유재로 여겨지는 건축물이 공공재의 성격을 내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단일 사업자에게 건축물 생산의 전 과정을 일임한다면 그 건축물의 안전과 성능을 어떻게 담보하겠는가? 정부에서 KS마크를 주면 되나? 감리도 전문성을 요하는데?

그래서 건축설계와 시공 분리는 상식이다. 건설사가 설계 겸업을 하게 되면 건축물의 기본 요건인 ‘쾌적성’과 ‘ 안정성’을 위해할 가능성이 큰 이유이다.

건축물은, 내적으로는 사람의 건강을 해치지 않을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고 사용자들의 다양한 이용 패턴과 생활 방식이 고려되어야 하며, 외적으로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환경 요인과 재해 및 재난에 대비하는 기술안전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여기에 또 다른 기본요건인 ‘심미성’은 다수의 공중을 위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건축은 지어졌다고 건물이 아니다. 인본적-환경적-기술적-공공적 요인들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정체다. 여기까지는 당위이다.

문제는 이같은 가치론이 언제까지 건설사의 이윤 추구 욕망을 저지할 수 있을까이다. 물론 건축사는 이윤추구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조절은 각 주체 간의 견제와 보완관계가 하게 된다. 설계와 시공이 분리되고, 시장과 공공까지 다양한 주체가 참여한 견제 관계를 통해 기본적인 가치가 지속해 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 신뢰 또한 담합과 비위/비리 등 변수를 상정하지 않은 이상이지만,  적어도 분리와 견제론의 당위성은 이러하다.

그런데 건설협회는 왜 불발한 요구를 지치지도 않고 계속하는 것일까? 이번에는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심산인가. 그들의 몰상식을 탓하기 전에 이 분쟁이 가능하게 된 전제조건은 설계의 전산화라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만약 손으로 도면을 그렸다면 비효율 탓에라도  건설사들은 설계겸업을 꿈꾸지 않았을 것이다.  각종 기술과 전문성이 건축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손과 머리에 전적으로 속해 있었디면 건설회사는 시공 이상 넘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누구든지 대체될 수 있는 시대이다. 건축계는 이미 30년 전부터 CAD로 대체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BIM으로 진화 중이다. 3D프린터는 시공기술자도 대체할 것이다. 이렇게 막강한 ICT기술 덕에 이젠 설계자가 없어도 설계를 할 수 있다.  표준화된 라이브러리에 저장된 유니트를 조합하면 도면이 뚝딱 완성된다. 구조, 설비 및 기타 엔지니어링도 프로그램이 사람보다 적절한 성능을 제시한다. 

사람의 몸을 대하는 정교한 수술도 로봇 영업사원이 의사를 대신할 수 있는데 건축물 설계 즈음이야 누구나 할 수 있다. 나아가 전혀 사람이 필요하지 않은 단계에 이르러 갈 때에 ‘굳이 왜 건축사사무소를 끼고 해야 하지’ 라는 무도한 발상은 어느새 점점 비상식에서 상식이 되어갈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건설협회의 10번 찍는 전략은 얼마나 유효한가? 지난 번에 실패했다고 이번에도 안 된다는 법은 없을 테니 언젠가 뜻은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비용과 편익 그리고 가치...
앞에서 전개한 모든 당위들이 언제까지 당위로 인정을 받고, 국토부의 이름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학연과 지연의 다른 말인  네트워크에 의존해서 업계들이 펼치는 방어전 또한 언제까지 가능한 전략일지 알 수 없다. 그보다는 당위론을 주장하고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방식을 넘어서는 건축설계의 성능 대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건축전문기자 이오주은 = 한국건설신문 취재부 차장  yoje@conslove.co.kr

 

이오주은 기자 yoje@conslo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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